도장 리버싱
예전 마소잡지에 일상 생활에서의 역공학 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요리 리버싱이라던가
악보 리버싱 등, 리버싱과 연관된 우리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여러가지 주변 얘기를 이것저것
나름 작성해본 글입니다.
생각해보면 시각의 방향을 한꺼풀만 뒤집어도, 일상에서 리버싱과 연관된 것은 너무도 많습니다.
하지만 플랫폼이 "일상"이라서 그런지, 다행히 그것이 "불법" 이라고 치부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식당에서 요리를 먹고 음식의 내부구조를 철저분석한 뒤,
집에 와서 와이프에게 그것과 똑같은 음식을 해주었다고 해서 불법은 아니니까요 ^^
바이너리 리버싱은 온통 불법 천지인 것을 생각하면(except of malware) 일상에서의 리버싱은
그나마 좀 나은 현실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이건 좀 도가 지나친데?' 라고 생각되는 reversing in daily life 도
있습니다. 제가 겪은 것 중 하나는 "도장 리버싱"입니다.
도장 리버싱은 보통 인감 도장을 사용해야 하는 곳, 중고차 시장이나 대출을 받는 곳
뭐 그런 동네에서 주로 이용됩니다. 급하게 서류를 처리해야 하는데 실수로 인감도장을
가져오지 않았고 하는 경우, 종이에 찍힌 빨간 도장글자를 보고 똑같은 도장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저도 한번밖에 보지 못했는데, 대충 원리를 보니 아마
종이를 스캔한 후 픽셀 등을 읽어서 도장 출력이 가능한 형태의 데이터 파일로 만들어 낸 뒤,
그대로 도장인쇄기 하드웨어로 전송하여 도장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온라인게임에서
GetPixel 등으로 화면 색깔을 읽어서 HP 나 몹 위치 등을 파악하는 것과 나름 유사한
원리가 되겠네요)
물론 아주 유용합니다. 거의 원본과 흡사한 도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실수로 도장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며 가격 또한 비싸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장이
필요한 곳 근처에서는 이런 도장 리버싱 문화가 아주 당연시 되어 있습니다.
"인감 안가져오셨어요? 아 괜찮아요 이쪽으로 오세요" 친절하게 안내해줍니다.
하지만 거꾸로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도장히 찍힌 종이쪼가리 하나만 있으면
도장 리버싱에 의하여 나의 인감도장이 언제든지 복사, 도용될 수 있다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상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인감도장을 찍는 종이는 외부인이 얼마든지 볼 수 있고
컴퓨터에 비하면 서버가 아닌 클라이언트며, 언제든 해커(도장 리버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동일한 도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일상에서의 역공학의 일부가 됩니다만 요리 리버싱이나 음악 리버싱과는 달리
법적인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도장은 돈이랑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이너리 리버싱에서도 법적인 요소가 수면위로 떠오를 때도 역시 돈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상황이 적용됩니다. 암튼 돈이 문제입니다 -_-;
물론 아직은 도장 리버싱이 뉴스화 되거나 법적으로 이슈화 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제가 못본걸 수도요 ;; ) 하지만 분명히 문제가 될 잠재적인 요소를 내재하고
있고 언젠가는 이것이 뻥 터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리버싱이 보안 업계내에서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듯이 도장 리버싱
또한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일상에서의 역공학은 앞으로도 아주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불법과 합법에 대해 어떤 가치의 잣대로 저울질 해야 할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악보
리버싱의 경우 예전에는 특정 음악을 리버싱하여 악보를 인터넷에 올려놓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악보 리버싱이 금지되어 있어서 저작권이 있는 음악은 공개적으로
악보를 업로드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국내에서는 모르겠지만 해외에서는 그렇습니다)
당장에는 아무 생각없이 자행했던 일상에서의 역공학들이 추후에는 어떤 법적 조항이
서드파티로 붙어서 따라다니게 될 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많은 것들이 불편해 지겠죠.
그러나 불편함과 보안은 비례하는 관계입니다. 불편하면 불편할 수록 보안 이슈를 크게
인식한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삶이 윤택해 질수록 많은 문화생활이 불편해 져야
오히려 더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명제는 언제 봐도 아이러니 합니다.
window31. 2010년 5월.
